금부도사가 구태여 목청을 가다듬으며 내처 물었다.

"삼번과 오번은 어떻게 보느냐!" 

생시까지 적혀 있는 삼번은 나이가 어렸다. 진명은 일부러 소리를 낮춰서 답했다.

"삼번은 사주 기운이 순하고 조화를 이루며, 운로가 파란만장하지는 않으나..."

진명의 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형리가 다급하게 금부도사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금부도사가 황급히 자리를 뜨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거라! 더 물어볼 것이 있느니라!"

진명은 호흡을 고르며 사주를 재차 살펴보았다.

술사들이 안도 반, 불안 반 심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강산이 '입증해 냈다'는 입 모양을 해 보이자, 술사들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백운은 고문당한 부위가 아픈 듯 인상을 쓰면서도 눈을 찡긋했다. 

강산이 주먹을 불끈 쥐며 진명을 향해 다짐했다.

'저들이 술서를 인정 하든 안 하든 그런 건 이제 관심 없습니다. 술서가 아니라 술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쉽지 않겠지만, 활인하는 진 술사의 길을 가도록 진력하겠습니다." 
 
돌아온 금부도사의 손에는 접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형리가 전해준 종이를 펼쳐본 진명은 거기 적힌 생일을 보고 속으로 흠칫 놀랐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세자저하의 생일이었다. 천세력을 뒤적일 필요도 없이 머릿속에 오래전에 새겨놓은 사주였다. 진명은 애써 티 안 나게 천세력을 뒤적여 사주 간지를 적어 내렸다.

금부도사가 지체 없이 묻고 들었다.

"누구의 사주인지 알고 있으렸다!"

"모르오! 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주를 어찌 다 안단 말이오!"

"그래? 그러면 그 사주의 수명 장단에 대해 말해 보거라!"

진명은 어이가 없었다. 속에서 분통이 치밀어 올라왔다.  

'이 자들이 감히 어디서, 감히 저하의 사주를 가지고 무슨 농간을 부리려고, 감히 수명 장단을 묻는단 말인가. 감히!'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금부도사가 진명의 말을 끊으며 호통을 내질렀다. 

"허험! 말이 많다! 명이 짧은지 긴지 그것만 말하라!"

진명도 지지 않았다.

"모르오!"

"모른다니! 그것을 말이라고 하느냐! 술사 나부랭이면 누구나 떠들어 대는 수명 장단 하나를 말하지 못한단 말이냐! 그냥 말해 보거라! 풀려나게도 해주겠다!"

진명이 금부도사를 직시하며 일갈했다.

"사람마다의 수명은 사주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오! 그런 것이 바로 혹세무민하는 것이오!"

금부도사가 팔걸이를 냅다 내리쳤다.

"정 그렇게 나온다면 더는 말할 것 없다! 여봐라! 이 자들을 모두 포박하여 끌고 가라!"

진명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포졸들이 달려들어 진명을 결박했다. 진명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점화의 훤한 이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점화가 이름처럼 점쟁이들의 꽃이 되고, 어둔 세상에 불을 켜는 술사가 되기를 빌었다.

끌려가는 술사들이 진명에게 애썼다며 눈인사를 했다. 끌려가는 진명도 술사들에게 기운 잃지 말라며 고갯짓을 했다.

 

 




남산골 명선방에 혼자 남겨진 점화는 서안 앞에 앉아 꼬박 밤을 세웠다. 스승님의 빈 자리가 보일 것 같아 불도 켜지 않은 채였다. 

초저녁에 강무녀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점화를 데리러 왔다가, 그녀의 고집을 익히 아는지라 그냥 돌아갔었다. 그러다 야심한 시각에, 그녀가 걱정되어 다시 명선방으로 왔다.

점화가 밤새워 고심한 것은, 스승님이 시킨대로 할 것이냐, 하지 않을 것이냐 였다. 스승님은 이런 갑작스런 사태에 대비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하라고, 누차 일러주셨다. 만사순명이니 아무런 염려하지 말고, 하던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셨다. 앞으로 읽어야 할 서책도 정해져 있었고, 해야 할 일도 순서대로 정해져 있었다. 먼저 명선방 현판을 떼내고, 대문을 닫고, 강무녀 집에 가서, 지관 술사님을 기다리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것이었으면 어둠 속에서 밤을 새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술사 일당이 잡혀가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씨 세도가에 줄을 대는 그들은 누구보다도 스승님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기회만 있으면 명선방을 해코지했다.  

일찍 눈을 뜬 강무녀가, 여태 앉아 있는 점화를 보고 기겁을 했다.

"네가 끝내 밤을 샜나 보구나. 누구를 닮아 그리 독하냐. 가자, 우리집 가서 밥 먹고 좀 자거라. 여기는 어서 문 닫고."

점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문 닫지 않아요!"

강무녀는 뭐를 잘못 들었나 싶었다.

"얘가. 이술사님이 안 계시는데, 뭘 어떻게 하려고 닫지 않겠는다는 거냐? 장안의 이름난 술사들이 끌려갔고, 너가 점괘를 뽑아보니 일이 얼른 풀릴 것 같지도 않다며?"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누군데?"

"곡학아세하는 김술사 패거리들이요!"

"..... 그래서?"

"그 사람들이 술업을 하는 한 명선방도 문을 닫을 수 없지요!"

"얘가, 점점. 그럼, 네가 방문객을 맞아 술사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지금?"

"해야지요! 오는 사람뿐만 아니라 스승님처럼 찾아가서도 해야지요!"

강무녀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는 얼굴을 했다.

"허, 네가 올해 몇 살인지나 알고 있냐? 열여섯의 그것도 처자가 술사 노릇을 하면 세상이 웃어요, 세상이!"

"술사는 경천애인하는 마음과 실력이 중요해요! 나이나 신분은 중요하지 않아요!"

점화는 입술을 깨물고 각오를 다졌다. 

 

명선방 지붕 위에서 참새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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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의 무술년 무오월 기미일은 2018년에는 없다. 무술년 기미월 을사일은 2018년 7월 12일에도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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