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화는 밤을 새워서 했던 자신의 생각을 거듭 확인했다.
'김술사 일당은 잡혀가지 않았다. 김술사는 김씨 세도가의 실세인 김대감 집을 수족처럼 드나든다. 민심은 흉흉하다. 이번 술사들 투옥에 김대감의 입김이 작용했다. 그렇다면 김대감을 움직여야 한다.'
점화가 결심을 거듭 굳히고, 근심에 싸인 강무녀에게 말했다.
"이따 저하고 어디 좀 같이 가요."
"... 어디를?"
"가보시면 알아요."
"얘가,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네 고집 꺾을 사람은 이술사님 밖에는 없는데, 이 일을 어쩌면 좋냐 그래."
대문 밖으로 나온 점화는 명선방 현판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스승님이 좋아하시던 아침 햇살 한자락이 현판에 비쳐 들었다. 스승님 생각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하늘을 보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걸음마 떼면서 스승님 무릎에 앉아 술서 얘기를 들었다. 조금씩 철이 들면서 자신에게는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스승님은 시도 때도 없이 술서 이치에 관해 질문하셨다. 뭐든 새로운 것만 떠오르면 묻고 또 물으셨다. 때때로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대해서도 물으셨다. 자신은 그 답을 찾기 위해 밤을 새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명선방을 찾아오는 수많은 손님들의 애환과 저잣거리의 소문들을 귀동냥했다. 그것이 지난날의 전부였다.
강무녀가 밥상을 내밀며 한숨을 쉬었다.
"이따 같이 가보자고 한 데가 어딘데?"
점화는 매번 챙겨주는 강무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답했다.
"점 보러 가는 거예요."
"점? 너처럼 용한 점쟁이가 무슨 점을 보러 간다는 거냐?"
"점쟁이도 자기 자신은 모르는 법이거든요."
"... 그래서 누구한테 갈 건데?"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어휴, 나도 모르겠다. 나중에 이술사님한테 무슨 말이나 안 들어야 할 텐데..."
점화가 한 숟갈 들다 말았다. 스승님 생각에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점화와 강무녀가 옷을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걸어가는 자태가 대갓집 규수들보다 볼품이 있었다. 점화는 종로에 이르러, 김술사 집이 어딘지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어린 것이 겁도 없이 어쩔 셈이냐며 강무녀가 안달을 했다.
김술사 집 대문 앞에 이르니, 점 보러 온 두 여자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점화는 마침 잘됐다 싶었다. 잠시 지체하다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점화와 강무녀가 손 큰 손님으로 보였던지, 건장한 남자가 넙죽 절하며 맞이했다.
점을 보는 방에서 한 사람이 잔뜩 겁먹은 얼굴이 되어 나왔다.
점화는 심호흡을 하고, 안내된 방으로 들어섰다. 김술사가 눈을 감고 고개를 움직거리고 있었다. 점화는 김술사의 관상을 살폈다. 두툼한 코와 입술, 좁은 이마와 미간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눈빛을 못 봤지만, 총명한 기운은 부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먼저 온 두 여인은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한 여자가 조급하게 되물었다.
"정말 우리 아들이 급살을 맞는다고요?"
"허참, 몇 번을 말씀 드리잖아요. 댁의 아들은 내년에 급살 맞을 팔자라니까요."
"우리 아들은 삼대 독자에요. 급살을 맞다니요, 도사님."
"급살 맞는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아들의 신상에 관해 몇 가지를 맞췄잖아요. 그걸 기초로 해서 급살 맞는다고 말하는 거예요. 터무니없이 겁주려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요. 댁의 아들은 급살 맞는 사주라니까요. 두고 보세요."
"아이고, 도사님. 급살이라뇨, 말도 안 돼요. 어떻게든 급살은 막아야죠. 도사님은 피할 방책도 알고 있을 거 아녜요."
"팔자를 그렇게 타고난 걸, 난들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어요."
김술사가 여유를 부렸다. 그럴수록 방문객은 애가 타는 법이다.
"그래도 도사님, 무엇이든 좋으니 피할 방책 좀 일러주세요, 예?"
김술사가 눈을 내리깔고 못 이기는 척 내뱉었다.
"뭐, 정 그러시다면 이 부적 한 번 써보세요. 이런 종이 껍데기가 무슨 효험이 있을까 싶겠지만, 천지의 기와 혼이 담긴 이런 부적은 격이 다르지요. 저 번에 어떤 분도 그런 경우가 있어서, 이 부적을 아들 배에다 싸주라고 했는데, 그 다음해에 거짓말처럼 배탈만 좀 나다 말았다고 하더군요. 써본 사람들은 효험이 있다고 하니까, 부적을 사시든 안 사시든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적잖은 공비 드려 굿하고 해봐야 번거롭고 한 번으로 끝나지만, 이 부적은 평생 몸에 지니고 다닐 수도 있는 거고..."
예상대로 김술사의 입에서 부적이라는 말이 나오자, 점화는 정신을 하나로 모아 하늘에 염을 올리고, 그 아들의 급살 여부를 묻는 점을 쳤다. 점화는 급박한 때에 쓰는, 숫자가 새겨진 여섯 개의 손마디만 한 죽편을 바닥에 펼쳐 놓아 점괘를 얻었다. 점괘는 급한 흉살로 풀이되지 않았다. 강무녀 뒤에 앉아, 점치는 움직임이 기척조차 없이 순식간이라, 김술사는 점화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여자가 부적 값을 물었다. 손바닥만 한 부적 한 장이 수십 명의 복채 값보다 많았다. 똑같은 부적이라도 파는 값은, 사는 사람의 신분과 사안에 따라 달라졌다.
"도사님 말씀이 그러시다면 부적이라도 써서 급살은 막아야죠.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아들 급살 맞는다는데 가만 있겠어요.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피할 방책을 써야지요. 더구나 우리 아들은 삼대 독잔데..."
그 여자가 부적 값을 내어 김술사에게 주려고 하자, 점화가 단칼에 잘라 소리쳤다.
"부적 쓸 필요 없어요!"
순간, 부적 값을 내려는 사람과 받으려는 사람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급살 맞으면 남산골 명선방으로 오세요! 제 목을 내놓을게요!"
점화가 일갈 후 대차게 방을 나왔다. 강무녀가 뒤를 따랐다. 김술사가 소리를 쳐댔다. 방으로 안내했던 건장한 남자가 점화 앞을 막아섰다. 점보던 두 여자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김술사의 문도들이 몰려나왔다. 수제자인 서고수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이 년들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가만, 그러고 보니 너, 너는 그 점화라는 계집 아니냐! 이년 봐라, 목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라 건드리지 않고 놔뒀더니, 뭐가 어째! 급살 맞으면 목을 내놓겠다고!"
"그렇소!"
"야, 이 년아! 네가 그 아들 사주라도 봤냐! 도대체 뭘 보고 급살을 맞느니 안 맞느니 떠드는 거냐, 어!"
점화가 당당히 맞서며 외쳤다.
"상말 하지 마시오! 술사를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면 안 되오! 급살 여부는 사주로만 보는 것이 아니오!"
서고수는 기죽지 않고 덤벼드는 점화를, 문하생들이 보는 앞에서 때리지도 못하고, 어쩌지도 못하고 씩씩거렸다.
점화가 서고수를 물고 늘어졌다.
"난 그 아들의 사주 또한 급살 맞지 않을 사주라고 믿소! 그 아들의 사주가 어째서 내년에 급살 맞을 팔자인지, 여기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번 설명해 보시오! 그러면 될 것 아니오!"
서고수는 뺨이라도 후려갈길 듯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다 번뜩이는 것이 있는 양, 손을 내렸다. 그리고 얼른 쫓아 버리라고 건장한 남자에게 손짓을 했다.
점화는 들어올 때처럼 의연하게 대문을 나섰다. "무슨 구경났냐"며, 문도들에게 "얼른 들어가라"고 다그치는 서고수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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