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은 포승줄에 결박되어 해미현 읍성으로 들어섰다. 정면으로 반마장 남짓 떨어진 곳에 동헌이 있고, 그 뒤로는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다.
이술사(진명)는 긴 숨을 몰아쉬며 지척에 드높게 솟은 산세를 살폈다. 초행길 나그네를 위압하기에 족한 산세였다. 마치 '나를 넘지 않고는 한 발도 내륙으로 들여놓지 못한다'며 그 위용을 맹렬히 과시하는 듯한 형세였다.
해미현의 하늘은 의금부 취조장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다르지 않았다.
체구가 건장한 현감이 죄인 문서를 읽고는 이술사를 훑어보며 호통을 쳤다.
"죄인은 고개를 들라! 혹세무민은 나라의 근본을 위태롭게 하는 천주쟁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이곳 해미현 옥사는 호서 내포 지방의 천주쟁이들을 수감하여 처형하는 곳이다! 죄인은 그리 알고 근신하며 죄를 뉘우치도록 하라!"
이술사는 곧장 투옥되었다. 옥 안은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음침하고 퀴퀴한 구석구석마다 죄인들이 신음하며 쓰러져 있었고, 그중에는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입은 옷에는 핏물 자국이 선연하게 배어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연로한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말로만 듣던 천주쟁이들이었다.
이술사는 벽에 털썩 기대앉아 기도하는 이들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들을 향한 처연하고 애처로운 마음에 몸이 가늘게 떨려 왔다.
이술사는 버릇처럼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고문을 받는 와중에도 저리 기도를 놓지 않고, 배교를 거부하며, 끝내 순교의 길을 택하는 저들은 대체 누구인가. 저 신심의 근원은 무엇인가. 임금도 필요 없고, 양반 · 노비 같은 신분제도 필요 없고, 조상 제사도 필요 없고, 부적이나 굿 같은 미신도 필요 없고, 오직 후세에 천당 가는 것만이 필요해서인가.'
'저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시각에도 주지육림에 빠져 쾌락의 단물을 핥고 있을 자들은 또 누구인가. 저들은 이러한 운명을 타고났고, 저들을 처벌하는 자들은 그러한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인가. 조상의 묘를 잘 써서 벌 주는 사람이 되었고, 팔자를 잘못 타고나서 벌 받는 사람이 되었는가.'
'저들은 오직 신심으로 택한 길이라고 웅변하는데, 그러한 것들마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고 허언하는 술사 나부랭이들은 또 누구인가. 같은 혹세무민의 죄목이면서 전혀 무관한 듯이, 이방인처럼 저들을 연민하는 자신은 또 누구인가.'
'저들과 저들을 처벌하는 자들, 그리고 임금과 그 백성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는 없는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층층이 계급을 짓지 않고, 상생하며 모여 사는 음양 조화의 세상은 꿈일 뿐인가. 이 모든 것들이 다 덧없는 세월의 장난일 뿐인가.'
이술사는 천주교도들이 즐겨 읽는 '천주실의'라는 책을 오래전에 읽었었다. 점화에게도 그 책을 읽으라고 권했었고, 공감이 가는 문구들은 따로 적어두기도 했다.
그 중, 치세하는 이치는 도리를 오직 하나로 함에 있다는 '평치용리 유경어일'... 이치의 체와 용은 너무 넓어서 다 알기 어렵다는 '이지체용광심'... 이치는 먼저 음양오행을 낳는다는 '이자선생음양오행'... 그리고 천주를 받드는 자는 다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한다는 '이위천주자 애인여기야'...라는 문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가슴 깊이 와 닿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 문구들을 종합하여 대저 우주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는 복잡해 보여도 결국 하나의 이치로 귀결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일(一)'은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체와 용, 즉 음양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우주 만물의 이치와 음양의 조화를 궁구하는 술사 나부랭이의 지향점 역시, 결국 천주교가 말하는 경천애인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스스로 규정해 보았다.
그리고 첫 번째 문구의 '유경어일(維經於一)'은 불교의 '만법귀일(萬法歸一)'과 유사하다는 생각에 더욱 공감이 갔었다. 다만 그 '일'을 불교가 '일귀하처(一歸何處)'라 하여 모든 것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화두를 강조했다면, 천주교는 천주, 상제 즉 하느님으로 연결시킨다고 여겼다.
여기서 천주교와 불교의 그 '일'이 하늘을 우러르느냐, 뿌리를 캐묻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갈림길에 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질 뿐, 우주를 이루는 음과 양의 양면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술사는 노정에 지친 팔다리를 주무르며 연세가 지긋한 천주교인을 바라보았다. 부디 타고난 수명대로 강녕하게 살다 고종명했으면 싶었다. 주역의 이치에 '극에 이르면 반드시 반전된다' 하였으니, 물극필반(物極必反)이니, 어쩌면 저들의 죽음 역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이술사는 신음하는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남을 연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점화가 일러준 대로 피신해 있는지 걱정이 앞섰다. 워낙 영특한 녀석이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성질에 고집이 여간내기가 아니니 영 불안하기도 했다.
해미현 옥사는 천주교도들과의 전쟁을 치르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한 명이라도 더 잡아들이고, 고문하여 배교를 강요하고, 끝까지 거부하면 가차 없이 죽이는 것이 그들의 존재 목적인 듯했다.
천주쟁이들은 오랜 수감 생활로 질병을 얻어 죽어나갔고, 허기와 고문에 못 이겨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관아의 형방이나 옥졸은 물론이고 죄인들까지도, 이술사 같은 일개 술사 나부랭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숨 막히는 시간들이 간단없이 흘러갔다.
하루는 옥문 앞에서 옥졸들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독한 년! 여 옥사의 그 은선이라는 년 말이야. 끝내 죽겠다는 거야, 뭐야?"
"그러게 말이야. 아니 웬만하면 이제 말 들을 때도 됐잖아. 벌써 몇 달째 저러고 있는 거야?"
"반반한 얼굴에, 한참 나이에, 뭐 할 것이 없어 천주쟁이가 되었나 그래... 제 조상 제사도 안 지내고, 주인도 몰라보는 그런 상놈의 것이 뭐가 좋다고 사람들이 빠져드는지 도대체 모르겠단 말이야."
"자식도 없겠다, 남편도 없겠다, 믿는 건 천주뿐이라 그런지 은선이 년이 제일 독해. 내가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건 말이야,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서도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뭘 웅얼거리면서 평안한 얼굴을 한다는 거야. 아니 그게 어디 사람이냐고... 그것도 남자도 아닌 여자가 말이야. 어떨 땐 고문하다가도 그년의 미소를 보면 아주 섬찟해질 때가 있다니까... 아니 사람이면 그 고통 중에 어떻게 그런 미소가 나오겠냐고."
"몇 번 더 나무에 달아서 고문해 보고, 정 고집을 피우고 배교를 거부하면 할 수 없지 뭐. 나라에서 명하는 대로 죽일 수밖에... 그 년도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는 판인데, 더 할 말 있겠어..."
사방이 조용해졌다. 간간이 신음소리만 흘러나왔다.
이술사는 그 '은선'이라는 여자가 어떤 사람이기에 옥졸들이 저렇게 혀를 내두르는지, 왜 끝까지 죽음의 길을 택하려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특이하거나 특출한 인물의 사주팔자를 궁금해하고 그 추이를 헤아려 살펴보는 것은 술사의 본능이자 일과였다.
이술사는 어떻게 하면 은선의 생년월일시를 입수할 수 있을지 궁리를 거듭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으니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궁리와 행함은 언제나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앞뒤가 꽉 막힌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늘의 도우심을 비는 것뿐이었다.
끝 모를 옥고에 심신이 쇠약해져 가던 어느 날 밤, 거적때기에 누워 있던 이술사에게 덩치 큰 포졸이 다가와 따라나서라 일렀다.
관아의 정문과 동헌 마당을 지나 쪽문을 밀고 들어가니 두 채의 집이 나타났다.
객사 뒤의 별채 앞에 멈춰 선 포졸이 나직이 아뢰었다.
"죄인을 대령했사옵니다."
"죄인을 문밖에 앉히도록 하고, 방문을 열거라!"
이술사는 포졸이 시키는 대로 방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포졸이 방문을 열자 은은한 등불빛이 새어 나왔다. 이술사는 허리를 곧게 펴고 정면을 응시했다. 현감이 책상에 마주 앉은 사내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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